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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동차업계의 전설 경영 천재 “Lee” Iacocca

<가슴을 뛰게하는 비즈니스 명장명 23> 책 내용에서 발췌하였습니다.

Lido Anthony “Lee” Iacocca

지난 달에는 무슨 걱정을 했었지? 작년에는? 그것 봐라.기억조차 못하고 있잖니. 그러니까 오늘 네가 걱정하고 있는 것도 별로 걱정할 일이 아닌거야. 잊어버려라. 내일을 향해 사는 거야.

– 리 아이아코카
이미지 출처: 나무위키

리 아이아코카는 어린 시절부터 차를 좋아했고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헨리포드였을 정도로 포드 사의 차들을 사랑했다. 포드자동차에 입사하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발음과 기억이 쉬운 ‘리(Lee)’로 바꿀 정도였다. 그는 32년간 포드자동차에서 일하며 모스탱의 전설을 만들었고, 1970년에는 회장직에 오르는 성공신화를 이어갔다. 그러나 차기 회장이 될 헨리 포드 2세와의 불화로 1978년 해임당하는 불운을 맞는다..

새로운 신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크라이슬러로 자리를 옮긴 그는 누적된 재고, 부패한 간부들과 고질적인 사내분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며, 35억 달러의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극적으로 회생시켰다. 포드자동차, 크라이슬러를 세계적 자동차 명가로 만든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전설로 남아 세간에 전해내려오고 있다.
크리아슬러에서 “1달러 연봉 선언”으로 노동조합을 석득하여 2번이나 임금 삭감을 이끌어 냈고, 1980년 한 해만 1만 5천 명의 정규직원을 해고한 뒤 유럽 지사도 매각하는 구조 조정을 단행하여 5억 달러에 달하는 비용 절감을 이루었다. 그리고 연방 정부로부터 15억 달러 규모의 융자금 보증을 얻어내고, 유럽 지사인 생카와 루츠 그룹이 공동개발한 소형차를 활용해 전륜구동 소형차 기술을 가지고 새 차를 개발했으며, 포드에서 구상했다가 받아들여지지 못한 미니밴 라인업이나 전륜구동 플랫폼인 K-바디 플랫폼을 만들어 히트시켰다.

노력 끝에 1982년 여름, 크라이슬러의 회장으로 된 지 만 7년이 되기 전에 아이아코카는 고질적인 부채 15억 달러를 일시에 갚고 7억 달러의 순이익을 남기는 신화를 이루어냈다. 5% 삭감했던 노동자 연봉도 원래 수준으로 올려 놓았고 해임했던 직원들의 상당수도 다시 불러들였다. 이어 아이아코카는 밥 루츠를 포함해 포드에서 일했던 회사 동료들을 크라이슬러로 데려왔으며, 평소 관심을 두어 왔던 AMC/지프, 람보르기니 등을 1987년에 인수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무리한 인수합병으로 회사가 다시 재정난에 처하고 K-바디 플랫폼의 활용과 보수적인 디자인을 고집하는 점, “1달러 연봉 선언”의 진정성까지 논란에 휘말림으로 1992년 말 후계자로 로버트 이튼을 지명하고 회장 자리에서 사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