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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원 지폐로 4300만 달러 차관 유치한 고 정주영 회장

<가슴을 뛰게하는 비즈니스 명장명 23 (저자 조영호)> 책 포스팅입니다.

출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오백원권

“이것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한국 사람이 만든 철갑선입니다.
거북선을 만든 후에는 위정자들이 어리석어 쇄국정책을 펴는 통에 산업화가 늦어지고 지혜에 녹이 났던 부분에 기름칠만 하면 이보다 더 훌륭한 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한국인을 믿어주십시오”

현대 조선소 작가 박득순 1973년 유화

고 정주영 회장은 경부고속도로 착공 직전인 1967년 12월에 현대자동차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렇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조선업을 일으킬 구상이 끝나 있었다.

조선소 건립은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 기초 기술도 없는데 조선업을 하겠다고요? 그건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정주영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정주영의 머릿속에는 국내의 풍부한 노동력을 바탕으로 조선업을 일으키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득 차 있었으며, 이를 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바클레이스 은행의 부정적인 반응에 정주영은 차관 도입을 위해 직접 영국으로 가서 영국의 제계에서 영향력이 큰 롱바톰을 찾아갔다.
“이것은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한국 사람이 만든 철갑선입니다.  거북선을 만든 후에는 위정자들이 어리석어 쇄국정책을 펴는 통에 산업화가 늦어지고 지혜에 녹이 났던 부분에 기름칠만 하면 이보다 더 훌륭한 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한국인을 믿어주십시오”

그의 마음을 움직인 결과  바클레이스 은행에 추천서를 써주어 차관 협의를 순조롭게 시작 할 수 있었으며 롱바톰의 소개로 리바노스 회장을 찾아가 유조선 2척의 주문을 받고 계약을 진행했다.

1974년 6월, 정주영은 26만 톤급 대형 유조선 2척을 건조하는데 성공했다. 현대 특유의 ‘창조정신과 개척정신’으로 1985년 생산량 기준 세계 1위의 조선소가 되었다.

<가슴을 뛰게하는 비즈니스 명장명 23 (저자 조영호)> 책 포스팅입니다.